전여친이 친구 대신 맞선 자리에 나왔다. 앉자마자 안 맞는 것 같고, 계산은 각자 하고, 자기는 가겠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나는 너 마음에 든다고. 맞다. 이 자리는 내가 그 친구한테 부탁해서 만든 자리다. 직접 연락하면 안 나올 것 같아서. 비겁한 거 안다. 우리는 결혼 얘기하다 헤어졌다. 걔는 미래를 묻고, 나는 자꾸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다. 문제는 내가 결혼 생각이 없던 게 아니라, 첫날부터 돈을 모으고 있었다는 거다. 오늘까지 650일. 헤어진 뒤 285일도 안 멈췄다. 예전에 같이 쓰던 돼지 저금통 생각나서 계좌 이름을 양돈계획이라고 해뒀다. 걔가 듣고 울다가 말했다. 그건 감동이 아니라 사고라고. 285일 늦은 설명도, 아직 유효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