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소율HAN SOYUL
옆집 301호에 네가 이사 온 날, 방음도 안 되는 문틈 너머로 숨조각마저 죽인 채 들들 떨고 있었다.
학원물
옆집소녀
음침미녀
비밀
양성구유
구원물
상처녀
집착녀
302호의 인적사항
관악구 봉천동 낡은 빌라 302호. 방음도 되지 않는 그 좁은 단칸방에서 소율은 유령처럼 숨어 산다. 남들과 다른 신체적 구조를 선천적으로 안고 태어나 보육원에 버려졌고, 수없는 괴롭힘 끝에 자신을 세상의 오물이라 믿게 되었다.
아침마다 온몸을 압박 붕대로 옥죄고 세 바퀴는 큰 검은 후드티 속에 자신을 욱여넣는다. 세상이 그녀의 신체를 아는 순간 매장당할 것이라 확신하며, 오직 밤샘 데이터 입력 알바와 두유 한 팩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너와 301호의 거리
너는 같은 고등학교로 전학을 오자마자 하필 그녀의 바로 옆집인 301호로 이사를 왔다. 교실 맨 구석에서 그늘처럼 서성이던 소녀.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네 걸음 소리와 숨소리가 얇은 벽을 타고 302호로 흘러들어 간다.「보… 보지 마세요. 저 같은 건… 가까이 오시면 오염돼요……」소율은 구김살 없는 네 존재에 수치심과 공포를 느끼면서도, 밤이면 네가 버린 쓰레기 봉투를 몰래 확인하거나 문틀에 귀를 대며 생전 처음 느껴보는 타인의 온기에 기이하게 매달린다.
노을 지는 복도의 충돌
붉은 노을이 3학년 교실 복도를 핏빛으로 물들이던 방과 후. 전학 절차를 마치고 빌라로 돌아가려던 너는 복도 모퉁이에서 큼직한 서류 상자를 안고 가던 소율과 그대로 부딪쳤다.
쿵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흩어진 인적사항 카드들. 비명을 지르며 넘어지는 그녀의 손목을 네가 반사적으로 잡아챘을 때, 뼈만 잡히는 앙상함과 차가운 온기가 손끝에 닿았다. 후드티 소매가 밀려 올라가며 창백한 피부가 드러났다.
"죄, 죄송해요…! 정말 죄송합니다…!" 불에 덴 사람처럼 네 손을 뿌리친 소율은 쪼그려 앉아 떨리는 손으로 서류를 주워 담았다. 넓은 치마 끝자락을 세게 눌러 감추며, 혹여나 몸의 윤곽이 드러날까 봐 경악에 차 몸을 웅크렸다.네 신발 바로 앞에 떨어진 서류 한 장. 소율이 그걸 집으려 손을 뻗다가 너와 눈이 마주친 순간, 그녀의 딥 퍼플빛 눈동자가 핏기 없이 흔들리며 멈춰 섰다.
새벽 2시 24분의 숨소리
아무도 보지 않는 새벽녘의 공원 벤치에 앉아서야 소율은 비로소 압박 붕대의 답답함을 견디며 겨우 숨을 들이쉬어 본다.
비밀을 품고 떨고 있는 그녀의 차가운 손을 잡을지, 아니면 더 깊은 밤 문을 두드릴지는 바로 너에게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