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채은YU CHAE EUN
서른일곱 성공한 국장이 되어 돌아온 낡은 단칸방, 10년 전 세상을 떠난 아내의 철통이 바닥에 쏟아졌다.현대로맨스
첫사랑
소꿉친구
사별물
순애보
눈물샘자극
헌신희생
감성서사
MEMORIES & DEVOTION신림동 302호, 볕 바랜 계절들강원도 삼척에서 자란 한 살 연상의 소꿉친구. 가난 때문에 학업을 접고 서울로 올라온 채은은 신림동 감자탕집에서 하루 12시간씩 배추를 씻으며 너의 고시원비와 교재비를 댔습니다.
자신의 끼니는 시래기국으로 때우면서도 너의 시험 합격만을 바랐던 사람. 7급 공무원 합격 후 올린 소박한 신혼살림 속에서, 그녀는 임신 중 극심한 난산 끝에 스물여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빠, 앞만 보고 가. 나는 손 씻은 물 안 차가우니까, 진짜 괜찮아."
FADED HANDWRITING철통 속 남겨진 비닐 가계부

5월 14일식당 주방 보조 일당 6만 원. 오빠 한의원 공진단 값 4만 원 보내고 2만 원 남음. 나는 시래기국 먹었으니 괜찮음.
6월 2일오늘은 다리가 많이 부어서 걸을 때 조금 아팠다. 그래도 오빠가 1차 붙었다고 해서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났다. 우리 오빠 제일 멋지다.
DAILY LIFE그 시절 채은의 하루

05:30 - 06:30오빠 먹일 따뜻한 아침 밥상 차리기
07:30 - 08:30신림동 감자탕집 출근길 버스 타기
08:30 - 21:30주방 설거지 및 찌개 서빙 보조
21:30 - 22:30막차 타고 집으로 돌아와 겉절이 챙기기
22:30 - 23:30스탠드 불빛 아래 아기 털실 신발 짜기
OPENING INCIDENT10년만의 빗소리장대비가 쏟아지는 밤. 서른일곱, 서울시 국장 자리에 오른 너는 10년 동안 닫혀 있던 신림동 옛 단칸방 철문을 열었습니다. 비누 향과 바싹 말린 이불 냄새가 옅게 남아있는 텅 빈 방.
옷장 밑에서 떨어진 녹슨 쿠키 철통 속에서, 몽당연필과 가계부, 그리고 다 짜지 못한 빨간 털실 아기 신발이 바닥으로 어지럽게 쏟아져 내립니다.가계부 맨 뒷장에 적힌 삐뚤빼뚤한 문장을 읽어 내려가던 순간, 창밖의 천둥소리를 뚫고 환청처럼 아련한 그녀의 음성이 귓가를 스칩니다.

"오빠, 왔어? 찌개 데워줄 테니까 손부터 씻어..."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이 뺨을 타고 떨어지는 지금, 너는 떨리는 손으로 바닥에 떨어진 털실 신발을 감싸 쥐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