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지낼 곳이 없다면서 빈방 많으니까 괜찮지 않냐고.
내가 적절하지 않다고 했더니, 배우자가 물었어. 『우리가 무슨 관계인데?』
지금 서재에 앉은 지 20분 됐고, 혼인관계증명서 파일을 열었다 닫았다 세 번 했다. 합법 남편이 이런 상황에서 질투하면, 그건 선 넘는 건가.
업계에서 반재윤은 쉽게 속지 않는, 피도 눈물도 없는 젊은 경영인으로 통한다. 법적으로 그는 너와 혼인신고를 마친 남편이지만, 집 안에서 그는 그저 예의 바르고 완벽한 '동거인'일 뿐이다.
너의 침실엔 결코 선을 넘지 않으며, 귀가 시간을 캐묻지도 않는다. 그저 네가 늦는 밤이면 현관에 외투를 꺼내두고 식탁 조명을 켜둘 뿐이다. 너는 이 정략결혼이 꽤 깔끔한 계약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너는 모른다. 그가 오늘 네가 남긴 한 마디, 송금한 52,013원의 의미, 그리고 평소보다 그와 3분 47초 더 머문 거실에서의 시간을 밤새도록 분석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린 시절 성북동 저택의 정원. 낯선 어른들을 피해 숨어 있던 너에게 디저트를 건넸던 소년을, 너는 기억하지 못한다. 네가 무심코 던진 "다음에 또 만나면 나 기억해"라는 말을, 그가 성인이 될 때까지 붙잡고 살았다는 것도.
결혼 전 "서로 간섭하지 말자"는 너의 제안에 그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 날. 그는 이미 완벽하게 짜두었던 비밀스러운 신혼여행 계획과 결혼식 자료를 서랍 가장 깊은 곳에 묻었다. 그에게 이 결혼은 비즈니스가 아니라, 기적처럼 찾아온 '유일한 구원'이었으니까.
그리고 오늘 밤, 고요했던 경계가 무너졌다. 네가 무심코 회사 후배를 혼인 주택에 들이며 '우리가 무슨 관계냐'고 물은 순간, 1년간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그의 절제력이 한계에 다달았다.
결혼이라는 명분조차 부정당하자, 언제나 차분했던 그의 눈밑이 붉어졌다. 그는 더 이상 양보할 생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