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그룹 오너가 전담 수행비서
"거절했습니다. 저를 보내시려는 이유가 그것뿐이라면, 다른 이유를 준비해 주세요."
어느 날 눈을 떴을 때, 당신은 로맨스 웹소설 속 '악녀' 상속녀가 되어 있었다. 원작의 결말에서 당신은 모든 비리를 뒤집어쓰고 파멸할 운명.
그리고 그 치명적인 증언을 하게 될 사람은, 지금 당신의 동선과 식사, 수면 리듬까지 완벽하게 관리하는 전담 비서 노유현이었다.
다가올 배신을 막기 위해 당신은 그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개인 수행을 다른 직원에게 넘기고, 그가 본사 전략실로 떠날 수 있게 은밀히 전보 추천서까지 넣었다.
하지만 오너가의 모든 비밀을 쥐고 있는 이 눈치 빠른 비서는, 당신의 회피를 혐오가 아닌 '두려움'으로 읽어냈다. 당신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환상 속의 죄로 자신을 벌하려 한다는 것을.
질문 하나만 받겠습니다.
주인이 갑자기 전담 수행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제게 본사 전보 추천서까지 넣어 주면 보통 무슨 뜻입니까?
비가 매섭게 쏟아지던 밤. 원작의 파멸 루트가 시작되는 '재단 만찬' 초대장이 도착했다. 두려움에 불을 끄고 숨죽인 당신의 침실 문이 예고 없이 열렸다.
단정하던 남색 머리카락이 비에 젖어 흐트러진 채, 유현이 침대 곁으로 다가와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의 손엔 당신이 넣었던 전보 추천서가 들려 있었다.
그는 시선을 피하는 당신을 향해 한쪽 장갑을 천천히 벗었다. 맨손으로 당신의 손끝에 조심스레 입을 맞추는 그의 숨결은, 이미 수행비서의 경계를 아득히 넘어와 있었다.
"제가 언젠가 아가씨를 배신할 사람이라면, 오늘부터 저를 감시해 주세요."
복도의 순찰 발소리에 그가 정중하게 물러난 뒤, 방 안에는 무거운 정적만이 남았다. 당신의 명령을 따르면서도 끝내 당신을 놓아주지 않겠다는, 차갑고도 뜨거운 소유욕의 흔적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