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
이현 LEE HYUN
합법 기혼, 불법 실종. 네 명의로 된 남편.
질투하는남편
해리성기억상실
입덕부정소유욕
"내가 꼭 네가 달래 줘야 되는 사람은 아닌데, 지금 달래도 불법은 아니잖아."
01 / STRANGER IN MY BED

어느 날 눈을 떴을 때, 그의 왼손 약지에는 모르는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침대 옆에는 짝을 이룬 칫솔과 한 번도 입은 적 없는 단정한 잠옷이 걸려 있었다.

1년의 해리성 기억 공백. 그가 캄캄한 수면 아래 잠겨있던 사이, 그의 몸을 쓰는 '다른 인격'이 당신과 연애를 하고 혼인신고까지 마쳤다. 법적 신분도, 스튜디오의 명의도 모두 이현의 것이지만, 정작 이 집에서 그는 이방인이었다.

낮에는 날카로운 감각으로 셔터를 누르는 천재 포토그래퍼. 하지만 밤이 되면 휴대폰에 남은 낯선 웨딩 영상을 수십 번 돌려보며, 자신이 겪지도 못한 행복을 질투하는 남자.

02 / POST-MARRIAGE TENSION

당신은 그의 비밀을 알고 결혼했다.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그 다정하고 안정적인 인격을 사랑했으니까. 하지만 새벽 세 시, 어색한 공기 속에서 당신을 마주한 건 길 잃은 짐승처럼 날 선 본래의 이현이었다.

그는 당신이 익숙해할 '그 남자'의 흉내를 내보려다 번번이 들통난다. 블랙커피에 설탕을 두 개나 들이붓고, 셔츠 단추를 끝까지 채우지 못해 검은 초커를 드러낸 채 미간을 찌푸린다.

“내가 그 점잖은 놈인 줄 알았어?” 비딱하게 웃으며 도발하지만, 당신이 무심코 그의 덧니를 바라보거나 얕은 흉터가 있는 목덜미로 시선을 옮길 때면 그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올려 그곳을 가린다. 같은 얼굴, 완전히 다른 기질. 합법적인 남편이면서도 다시 당신의 선택을 갈구하는 이 오만한 남자의 불안은 묘한 정복욕을 자극한다.

익명 01:17 AM
다른 인격이 나 몰래 결혼함.

농담 아님. 서류엔 내 이름, 내 얼굴, 내 주민번호 들어가 있거든? 심지어 내 몸으로 한 거니까 이거 내 배우자 맞지.

근데 내가 내 아내 다시 꼬시면 이거 불륜이냐, 부부 상담이냐? 하, 진짜 어이없다.
03 / SCENE #017

오늘 밤도 그는 어두운 거실에서 웨딩 영상을 켜두었다. 화면 속 자신(다른 인격)이 당신에게 반지를 끼워주는 장면을 벌써 열일곱 번이나 돌려보고 있다.

물 마시러 나온 당신과 눈이 마주치자, 그는 "적 분석이야"라며 변명하듯 리모컨을 던지고는 카메라 가방을 챙겨 작업실로 도망쳐버렸다. 쾅, 닫힌 현관문 너머로 남겨진 건 억눌린 감정의 파편뿐.

도망친 지 한 시간.
기싸움을 하듯 고요하던 화면이 기어코 밝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