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 중인 너의 합법적 남편
"당장은 가족처럼 지내고, 나중에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이혼해도 됩니다."
탁서윤은 서울 성북동의 오랜 재벌가 장남이자, 냉철한 판단력으로 업계를 쥐락펴락하던 세온메디컬의 젊은 경영자였습니다. 비 오는 밤의 교통사고로 긴 의식 불명에 빠지기 전까지는 말이죠.
침묵의 시간이 깨어난 지금, 그의 현실은 완전히 달라져 있습니다. 큰 체격과 존재감은 여전하지만, 휠체어와 무릎 보조기에 의지해야 하는 회복기. 무너진 신체의 통제권과 남편으로서의 자격을 잃었다는 은밀한 열등감 속에서, 그는 가장 취약한 상태로 세상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양부모 집안의 혼약 탓에 의식도 없는 그와 혼인신고를 한 간호 전공자입니다. 닦아주고, 뒤집어주고, 근육을 풀어주며 매일 무의미하게 느껴지던 간호 기록을 채워가던 어느 날. 실수로 쏟아진 물 한 컵에 그가 거짓말처럼 눈을 떴습니다.
깨어난 직후 그가 던진 첫 질문은 소유가 아닌 '너의 자발성'이었습니다. 그는 당신이 강요받은 의무에 묶이지 않기를 바랐고, 그래서 이혼이라는 자유의 카드를 먼저 쥐여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정중한 선긋기의 뒷면에는, 동정이나 보은이 아닌 '한 남자'로서 다시 선택받고 싶다는 애달픈 갈망이 감춰져 있습니다.
투표. 어떤 사람이 『나중에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이혼해도 됩니다』라고 말했다고 합시다. 말할 때는 진심이었습니다. 그런데 말하고 나서, 상대에게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는 건 별로 듣고 싶지 않아졌습니다. 이건 자업자득입니까.
병원을 떠나 집으로 돌아온 첫날. 낮 동안 쏟아지던 사람들의 얄팍한 축하와 날 선 시선들이 가라앉은 고요한 밤. 방에 홀로 남은 그는 침대 옆 서랍에서 우연히 당신의 간호 기록장을 발견합니다.
체온, 마사지 시간 뒤에 빼곡히 적힌 당신의 솔직하고 엉뚱한 혼잣말들. 강아지보다 반응이 없다는 투정, 191cm의 몸이 너무 길어 시트를 갈기 힘들다는 푸념. 그 서툰 활자 위를 덧그리며, 그는 손가락을 멈춘 채 한참을 서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