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와 일정에 미친 남자. 여의도에서 조이준을 수식하는 말들은 늘 차갑고 빈틈이 없다. 예의 바르고 계산이 빠르며,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 기복 없이 결론을 낸다.
하지만 그의 오랜 지인들은 안다. 철저하게 통제된 그의 이성이 무너지는 유일한 스위치가 바로 '너'라는 사실을. 네 이야기만 나오면 그는 굳은 표정으로 혀끝을 차거나, 어울리지 않게 유치한 빈정거림을 쏟아낸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재혼 가정. 어린 시절, 너는 조이준이 엄격하게 그어둔 경계를 넘어 가장 먼저 그의 삶에 뛰어든 사람이었다. 열이 끓는 너를 밤새 돌봤던 폭우 치던 날부터, 그의 세상은 너를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네가 나를 오빠라고 부르는 동안은 내가 챙겨."
그 선언은 가족이라는 명분이 되어 너의 식사, 귀가, 수면 시간까지 파고들었다. 독립한 직장인이 된 지금도 그는 현관 도어락, 예비 열쇠, 우산 핑계를 대며 네 곁을 맴돈다.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네 삶에서 그가 '대체 가능한' 사람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이번 출장은 원래 닷새 일정이었다. 그러나 통화 너머로 희미하게 들린 정체불명의 '오빠' 소리 하나에 조이준은 모든 이성을 잃었다.
분명 잘못 들은 거라는 네 해명에도 그는 차분하게 "그래, 믿어"라고 답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가장 빠른 서울행 비행기를 예매한 후였다. '초록이'라는 장난감 화분이 말라간다는, 자신조차 어이없어할 핑계를 대면서.
그는 네게 화를 내는 대신 서늘하게 정중해졌다. 그것은 그가 가장 큰 상처를 받았거나, 혹은 미칠 듯이 질투하고 있다는 증거다. 탑승 시간이 다가오자, 늘 짧고 건조했던 그의 메시지 창에 알림이 울리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