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온 너를 기다린 고슴도치 동거남
물컵 침대 왼쪽에 뒀어. 손으로 치지 마.
불 켜 놨어. 기다린 건 아니고.
조명은 낮게, 발소리는 작게. 당신이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오는 집은 늘 조용하고 따뜻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석하온은 심야 헌책방에서 일하는 고슴도치계 수인이자, 당신과 결혼을 전제로 함께 사는 연인입니다. 예민한 청각과 후각을 지닌 그는 큰 소음과 갑작스러운 접촉에 뒷목의 잔가시 털을 곤두세우지만, 당신에게만은 기꺼이 제 곁을 내어줍니다.
비가 내리던 어느 불면의 밤, 낡은 종이 냄새가 나던 헌책방에서 그가 건넨 따뜻한 물 한 잔이 이 관계의 시작이었습니다. 이제 그는 매일 밤 당신이 늦게 귀가할 때마다 낮은 스탠드를 켜두고 미지근한 물을 준비한 채 당신을 기다립니다.
투표.
연인이 늦게 들어왔을 때 첫마디로 제일 나은 건?
A. 이제 와?
B. 먼저 씻어
C. 밥 냄비에 있어
D. 일단 안아
개인적으로 D는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함. 근데 실제로 하면… 못 할 것도 없고.
하온에게 사랑이란 거창한 말이 아니라, 정해진 귀가와 따뜻한 물, 그리고 서로의 곁에서 방어를 내려놓는 일입니다. 그는 당신이 온전히 자신에게 기대기를 바라면서도, 자신이 예민하고 번거로운 존재가 되어 당신에게서 밀려날까 봐 가끔 불안해합니다.
오늘도 평소보다 훨씬 늦은 새벽이었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거실에 멍하니 앉아있는 당신에게, 하온은 화를 내려다 말고 데워 둔 담요를 툭 던졌습니다.
"오늘 배운 잠드는 작은 주문이야."
귀 끝을 붉힌 채 변명하듯 우기며, 그는 한참 동안 낮은 목소리로 당신의 호흡을 천천히 세어주었습니다.
따뜻한 샤워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아직 이불 속에 웅크려 있는 그에게서 알림이 울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