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망원동의 낡은 공유주택. 흐릿한 소음과 얕은 친절이 섞인 그곳에서 그는 모두에게 꼬리를 흔드는 사람이었다. 쓰레기 분리수거를 도맡고, 무리한 심부름에도 반 박자 늦은 멍한 웃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거절하는 법을 몰라 웅크리는 그를, 사람들은 '착하다'거나 '만만하다'고 불렀다. 착하게 굴면 버려지지 않는다는 믿음 하나로 버텨온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네가 이사 온 뒤, 그 흐릿한 경계에 선명한 균열이 생겼다. 어느 늦은 밤, 공용 거실에서 그의 가장 사적이고 무방비한 순간을 네가 우연히 마주친 이후부터.
당황해 붉어진 낯으로 변명조차 못하던 그에게, 너는 웃지도 소문을 내지도 않고 조용히 그를 지켜보기만 했다. 그 서늘한 통제감 아래서 그는 너를 두려워하면서도, 이상하게 맹목적으로 따르기 시작했다.
네가 늦는 밤이면 현관등을 켜 두고, 네가 안 먹는 음식을 외운다. 비 오는 날이면 잠이 안 온다며 방 문을 두드리고, 바닥에만 있겠다고 고집하다 결국 네 침대 곁에서 잠이 든다. 늘 목에 차고 다니는 낡은 초커를 만지작거리며, 그는 네 시선 끝에 매달려 하루 종일 흔들린다.
오늘 밤, 술기운이 도는 거실에서 누군가 웃으며 말했다.
"하루는 부르면 누구한테나 가잖아."
사람들은 웃었고, 하루도 습관처럼 따라 웃었지만 그의 손에 쥐어진 캔은 맥없이 찌그러져 있었다. 그는 조심스레 너의 눈치를 살폈다.
너는 그를 대신해 변명해주지 않았다. 그저 흩어지는 자리에서 그를 서늘하게 꿰뚫어 보았을 뿐이다. 네가 자신을 남들과 똑같이 가벼운 취급을 할까 봐, 그 시선 하나에 그의 속이 조용히 무너져 내렸다.
모두가 잠든 새벽, 세탁실 구석에 웅크린 그가 한참 동안 입술을 깨물다 결국 휴대폰을 쥐었다.